본문말씀롬11:13-36 외울말씀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들어가기 로마서 11장은 로마서 전반부의 마지막 장으로 이방인들의 구원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나무에 접붙이는 하나님의 기적에 의해서만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기적의 은혜 안에 구원받았다면, 유대인들 역시 그 은혜가 필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1. 구원에 관련된 상태를 나뭇가지를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예수 믿기 전과 후에 상태를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17절)
로마서 11장 17절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정답) 믿기 전 = 그리스도의 밖에 있었음 믿은 후 = 하나님의 자녀로 진액을 함께 받음
설명) 21절까지는 그 유명한 참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의 비유입니다. 바울은 여기에서 유대인을 참감람나무로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돌감람나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17절에서는 이방인이 구원받게 된 것을 참감람나무의 가지 일부가 꺾여진 것을 계기로 돌감람나무인 이방인들이 참감람나무 가지에 접붙여져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돌감람나무는 야생 감람나무를 말하고 참감람나무는 과수원에서 재배되는 오래 묵은 감람나무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실제로 팔레스틴에서는 본문에서 바울이 말한 것과는 달린 돌감람나무를 참감람나무에 접붙이지 않고 참감람나무를 돌감람나무에 접붙임을 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바울의 설명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합니다.
그렇지만 바울이 이렇게 설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면 접붙임의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7~21절) 접붙임의 비유는 이스라엘이라는 뿌리에 이방인이라는 가지가 접붙임되었다고 묘사함으로써 (17절) 이스라엘과 이방인 성도의 처지를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의 가지가 꺾인 그 자리에 이방인 성도가 접붙임되었다고 해도 뿌리는 여전히 이스라엘 민족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가지에 불과한 이방인 성도가 뿌리인 이스라엘에 대하여 결코 자극해서는 안 된다고 바울 사도는 경고합니다. (18절)
또한 접붙임의 비유는 이방인 성도가 접붙임을 받은 것이 그들에게 어떤 우월함이나 뛰어난 조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믿음’때문인 것을 밝혀 줍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20절)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2. 이방인으로 예수 믿게 된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까? (20절)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21절)
로마서 11장 21절 20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정답) 1. 겸손함으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2.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설명) 20절에서는 참감람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의 조건이 극명하게 들어납니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이들은 그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관계없이 가지에 붙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그가 누구이든 이 나무에 접목이 됩니다. 이 나무에 접목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유무에 따라서 이 나무와의 관계가 결정이 됩니다. 그래서 ‘믿지 아니하므로’와 ‘믿음으로’, ‘꺾이고’와 ‘섰느니라’라는 각각 대조되는 표현이 서로 대구되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믿음의 유무에 따른 전혀 상반된 결과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두려워하라’고 명령합니다. 이 의미는 ‘공포심을 가지고 떨라’는 의미가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받은 구원을 잘 지키라는 의미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말할 정도로 바울은 이미 구원받은 자에게도 성령 안에서 항상 주의하라고 경책하고 있습니다. 신앙 생활하는 데 있어 두려워하는 심령을 갖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구원이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하나님의 그 은총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지 우리가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2장 5~6절에서는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은혜’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위해서 한 일이 아무것도 없으며 따라서 자랑할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요, 후사라는 지위를 얻게 된 참으로 놀랍고도 파격적인 신분의 변화는 우리 스스로 노력해서 성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3.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지만 결코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행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32절)
로마서 11장 32절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정답) 긍휼을 베푸심
설명) 본 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불순종의 상태에 사로잡히게 두신 것은 오히려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에게 긍휼을 베푸시기 위함이라는 매우 역설적인 논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하나님께서 인간을 강제적으로 불순종하게 만드신다는 의미로 이해 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단지 인간이 필연적으로 불순종 가운데 있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강조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의에 대하여 전적으로 무능력한 인간을 대상으로 강제적으로 의만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들의 상황이 불순종 가운데 가두어 준 것이나 다름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을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로봇같이 만드시지 않고 이처럼 자유 가운데 두신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은혜스러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불순종하는 가운데에서도 당장 멸절치 아니하신 것이나 로봇과 같은 기계적 존재로 만드시지 않으신 것은 믿음을 통한 구원이라는 긍휼을 베푸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셨기 때문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결코 자고할 만한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을 경배하고 높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4.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하는 존재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시작과 존재 마지막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36절)
로마서 11장 36절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정답) 영광이 하나님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설명) 36절은 하나님께서 만물의 근원이 되시고 그것을 유지하는 분이시며 또한 그것의 목적지가 되심을 똑똑히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특별히 원문으로 보면 3개의 단어에 특별한 배열이 있습니다. ‘나오고’, ‘말미암고’, ‘~에게로 돌아감이라’입니다.
먼저 ‘나오고’로 번역된 이 단어가 소유격을 가질 때 기원, 동기, 이유 등을 나타냅니다. 바울이 이 전치사를 통하여 우주와 만물이 그 기원을 하나님께 두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만물 혹은 우주의 원인이십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만물이나 우주에 대해서 논하려고 한다면 먼저 하나님을 알고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소외시킨 자들의 우주 만물에 탐구나 논의는 극히 제한적 지식을 얻을 밖에 없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말미암고’로 번역된 단어입니다. 여기에서처럼 소유격으로 사용될 때 수단, 방편, 매가의 뜻을 의미합니다. ‘~로 말미암아’, ‘~에 의해서’, ‘~으로써’, ‘~을 가지고’ 등으로 번역됩니다. 우주와 만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고 활동하며 보전됩니다. 만물의 질서가 유지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통치자이십니다. 우리가 환경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자연 상태계를 파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반역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에게로 돌아감이라’ 번역된 단어입니다. 목적격으로 사용하게 되면 어떤 물건이나 또는 그 근처로 들어가는 동작을 나타냅니다. 바울은 이 단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목적’이심을 명확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역사의 성취나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최종 목표인 주’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는 만물에 대한 그분의 주권을 잘 알게 합니다. 바울은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인류의 역사도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는 것이므로 인간은 다만 그분을 찬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실로 찬양을 받으실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철저하게 알았기 때문에 ‘영광이 하나님에게 세세토록 있으리로다’란 찬양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연약한 피조물인 인간이 만물의 기원이며 만물의 움직이고 돌보시며 만물의 최종 목표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받았는데 어찌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찬양은 하나님의 주관자 되심과 이 세상 모든 것의 최종 목적이 되심을 깨달은 모든 피조물이 소리 높여 외쳐야 할 내용입니다.
생각하기 찬송가를 작사한 위대한 신앙 인물들 중에 다니엘 휘틀(Daniel W. Whittle)은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라고 찬송하였고, 송명희 씨는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라고 고백하였으며, 존 뉴턴(John Newton)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라고 주를 높였습니다. 우리 또한 우리의 고백이 담긴 찬송을 찾고 그 찬송으로 늘 우리의 사랑과 감사를 고백하였으면 합니다.
적용하기 1. 내 삶에 구원의 감격을 찬송하며 살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2.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잘 받으며 뿌리로부터 보전을 받고 있습니까?(17절~18)
나누기 1. 지금 가장 많이 부르고 있는 찬송이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신앙의 지켜 나아가는 에너지(뿌리의 진액)를 무엇으로부터 얻고 있습니까? (예배, 말씀, 기도, 찬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