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롬13:1-14 외울말씀롬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들어가기 사도 바울은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상속에서의 삶의 모습(1~7절),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의 삶(8~10절), 영적 생활(11~14절)의 모습까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고 믿음을 지켜나가는 성도들 모습을 하나하나 배워나가 봅시다.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고 명령합니다. 왜 복종해야 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1절) 답 :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난 것이고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기 때문에
설명) 본문에서 말하는 ‘위에 있는 권세들’은 국가(정부)의 권세와 위정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모든 권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국가의 권세들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씀 역시도 남편이 존중받을만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권위를 주시고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칼빈 역시도 기독교강요 마지막 장에서 통치권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공적권력은 신적 기원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궁금해지는 것은, 악한 집권자들에게도 복종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악한 지도자들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법적인 산헤드린 공회의 결정과 빌라도의 재판을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벧전2:1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환들아 범사에는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칼빈은 악한 집권자라 할지라도 그들의 권위를 무조건 배척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람의 인격을 보고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지위’에 복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악한 자라도 공적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에 의해 세움받은 것이기 때문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은 여러 곳에서 악한 왕에게도 복종하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했던 사울왕을 오랫동안 섬겼고, 예레미야 선지자 역시 바벨론 왕을 섬기라고 말했고, 다니엘서는 특히 이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칼빈은 악한 집권자들을 심판하는 것은 일반 시민들이 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다만 주의 도움을 간청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에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와 통치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앗수르와 바벨론 같은 나라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진노의 막대기와 몽둥이로 사용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악한 권세에 복종하는 것에 ‘한 가지 예외’를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 왕에게 복종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불복종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악한 왕에게 복종할 것을 다니엘서를 통해서 말했지만, 동시에 불경건한 왕에게 복종하지 않았던 다니엘의 행동에 대해서는 결코 죄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행5:29절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베드로 사도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도록 강요하는 정권의 명령에 신자는 불복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폭력적인 투쟁을 정당화해서는 안됩니다. 천국 백성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산상수훈에서 주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마5:44)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 역시 사울을 향하여 자신이 사울을 해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 다스리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다스리는 자들의 무엇에 대하여 심판을 하십니까?(3절) 답 : 악한 일에 대하여 심판을 하십니다.
설명) 3절 말씀은 다스림을 받는 자들이 권세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은 선을 행하기 때문이 아니라, 악을 행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3절 말씀은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와 제도의 이상적인 목적이 ‘권선징악’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2번 문제는 다스림을 받는 자들만이 아니라 다스리는 자들까지 포함해서 묻고 있는 질문입니다. 본 질문은,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들이 잘못했을 때를 말하고 있는 것인데, 이들 역시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이기에, 하나님께 권세를 받은 자들도 악을 행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세상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받은 자들입니다(창1:28). 세상을 다스릴 때에 악을 행하지 않고 무엇을 행하여야 합니까?(9절~10절) 답 : 사랑으로 행해야 합니다.
설명) 하나님이 국가와 정부를 세우신 목적은 정의를 구현하는 것입니다.(1~7절) 그런데 이 말씀에 바로 이어지는 말씀이 이웃사랑입니다. 즉 정의와 사랑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의를 위해 사랑을 배제하여도 안 되고, 사랑 때문에 정의를 무시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즉, 10절 말씀처럼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8절 말씀은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9절 말씀은 그 실례로 십계명 중 이웃에 관한 계명을 말씀합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그러나 이 모든 계명은 사랑할 때 비로소 지켜질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10절 말씀이,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자는 하나님께 갚을 수 없는 사랑을 받았고, 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신자는 삶의 기본 원리는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으로 하게 되면 율법은 무거운 것이 아니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해야 합니다. 사랑하려고 노력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안에 깊이 잠기기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4.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진 지금은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12절). 이 빛의 갑옷을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14절) 답 :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입니다.
설명) 11절~14절 말씀은 주님이 재림하실 마지막 때가 가까웠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종말의 때에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 때에 성도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12절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밤이 깊었다고 말하는데, 밤이 깊었다는 것은, 타락이 극에 달했고, 어둠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어둠의 시대가 곧 끝나고 주님이 오실 때가 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세상에 물들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12절에서 깨어 있는 것을 빛을 갑옷을 입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데, 갑옷이라는 말은 영적 전쟁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성도의 삶은 영적인 전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를 살면서 너무나 편리하고 살기 좋다고 말하는 것은 이미 영적으로 둔해져 있고 잠들어 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영적으로 깨어있는 것을 14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바울은 14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는 것을,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것과 비교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은 자기 중심적인 육신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을 말씀하는 것이요, 영적으로 깨어 있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의미에 대해서는 5번 문제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5. 영의 옷인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14절) 답 :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합니다.
설명)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을 원문대로 번역하면, “육신을 위해서 근심하지 말라”는 의미인데, 눅21:3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여러분, 정욕을 위해 육신의 일을 도모한다는 것은, 생활의 염려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활의 염려에 사로잡혀 있으면 마음이 둔하여지게 되고, 주님이 오셔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활의 염려에 사로잡혀 있으면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것이요, 마음이 둔하여져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둔해져 있으면 세상을 쫓아가고 있고 죄 가운데 있으면서도 스스로 그것을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을 보십시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까? 그러나 그의 영이 어둠에 빠져 있으니까 충신을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는 끔찍한 짓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하면서도 영적으로 잠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십시오. 내 입에서 가장 많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점검해 보십시오. 가시떨기밭과 같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빠져 있진 않습니까?
여러분, 낮이 가까웠습니다. 이제는 깰 때입니다. 13절 말씀이 말하고 있는, 방탕과 술취함, 음란과 호색, 다툼과 시기는 정확하게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방탕이라는 말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TV 방송과 유튜브를 보십시오. 모든 것이 먹고 즐기는 것입니다. 엄청난 음식을 쌓아 놓고 돼지처럼 음식을 먹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즐거워합니다. 여러분, 지금은 마지막 때이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사랑의 법을 따라 살아가십시오.
생각하기 성령을 모신 사람은 2000년 전에 살던 사람이나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나 닮은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오실 날이 멀지 않았다’라는 종말 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겁니다.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위기의식을 갖고 산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나 우리가 똑같이 성령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대와 세대를 지내오며 여전히 독특한 위기의식을 갖고 살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졸고 있지 않고 늘 깨어 있으며 기도할 것을(골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