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고전1:18-31 외울말씀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들어가기 문제가 전혀 없는 그리스도인 모임을 본 적이 있습니까? 아마도 구원의 완성을 향해 성화되어지는 자들의 모임이기에 그런 모임을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고린도 교회는 결코 완전하지 않는 오히려 문제 투성이의 교회였습니다. 분열이 존재하였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고린도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1. 이것은 처음에 미련하게 보였습니다. 이제는 구원받은 백성으로써 보니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18절) 답 : 십자가의 도
설명) 여기서 ‘도’는 원어로는 ‘로고스’, 즉 ‘말씀’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라는 것은 ‘십자가의 말씀’이요, 십자가의 말씀은 곧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의 핵심은 23절이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도는 하나인데,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부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부류는 멸망하는 사람들이고, 한 부류는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미련한 것이라고 하는데, 바울 사도는 22절, 23절에서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데,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거리끼는 것이고, 지혜를 찾는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왜 거리끼는 것일까요?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구원해 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메시야가 오면 능력과 표적(기적)을 행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하는 구원자(메시야)인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버렸습니다. 사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란 말 자체가 이상한 말입니다. 여러분, 신21:23절은 “...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즉, 십자가에 못 박힌 자는 저주를 받은 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가 어떻게 영광과 승리의 상징인 그리스도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표적을 구했던 유대인들에게는 저주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꺼리끼는 것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방인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이방인, 특히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요구했고, 이들이 최고로 여기는 것은 지혜를 찾는 것, 즉 철학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한 복음은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셨고, 당시 가장 비천하고 흉악한 죄수에게 집행하는 십자가형에 처해져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는 하니, 지혜를 찾는 헬라인들에게 십자가의 도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저 미련한 것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는 자들에게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이것은 2번 문제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는 무엇입니까?(24절) 답 :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
설명) 그리스도(그리스도의 복음=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회개하게 하고, 죄를 이기게 하는 능력은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대속적 희생을 통해서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대신 사람의 죄의 대가를 치름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충족시킴)
그러나 이러한 십자가의 도는 아무나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능력과 지혜가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남들보다 지혜가 있어 십자가의 도를 이해한 것이 아니고, 남들보다 선해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주권)에 의해 우리에게 믿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었지만 거부했습니다. 아니 거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그러니 감사하십시오. 저와 여러분들은, 세상 사람들이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얻고 싶어하는, 그러나 얻을 수 없는 영생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3.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의 모습은 세상에서 자랑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지혜롭지도 않고, 명문 가정도 아닙니다. 똑똑하지도 않습니다. 천하며 약한 존재였습니다. 이렇게 부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29절) 답 :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고
설명) 29절은 앞에서 말한(26절~28절) 하나님이 미련한 자들을 택하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2번 문제에서 살펴본 것처럼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구원을 받아도 우리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더구나 바울은 28절에서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 천한 것과 멸시받는 것을 택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어떤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세상에서 지혜와 능력과 좋은 가문을 자랑하던 자들의 자랑과 교만을 꺾기 위해 이렇게 미천한 자들을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혜 있고 능력 있는 자들이 아니라 미련하고 천한 자들을 택하심으로 육체를 자랑하던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29절 말씀에는 고린도교회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도 담겨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교회에 있던 문제 중의 하나는 성도들이 교만에 빠져 스스로를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파를 나누어서 나는 바울에게 세례를 받았다, 나는 아볼로에게 복음을 배웠다하고 자랑하면서 나는 바울파요, 나는 아볼로파요, 나는 게바(베드로)파요, 나는 예수파라고 하며 분열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고린도교회에는 은사가 풍성하게 나타났는데,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교회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자랑하고 내세우는 용도로 사용하며 영적인 교만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본래 어떤 사람들이었는가를 상기시키고, 왜 하나님이 미련하고 천한 그들을 택하신 것인지 그 이유를 들려주면서, 잘못된 자랑과 교만에서 깨어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담으로 한 가지 더 살펴보자면, 은사가 풍성했던 고린도교회에 너무나 많은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이것은 은사가 신앙의 성숙도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요즘은 많은 성도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은사를 찾아다니는 것을 봅니다. 물론 은사는 귀한 것이지만, 그러나 은사를 쫓아다니다가는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같이 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직 십자가의 복음만이 진정한 구원의 능력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4. 자랑할 것이 많이 있어도 오직 자랑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31절, 시34:2) 답 : 주 안에서 자랑하라
설명) 31절 말씀은 렘9:24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기서 하나님을 아는 것을 자랑하라고 하는데, 바로 앞 23절은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어떤 지혜나 용맹이나 부함보다도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죄악의 핵심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말씀을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는 말로 바꾸었는데, 의미는 같은 의미입니다. 사도가 30절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받은 모든 은혜와 은사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자랑하려면 자신이 받은 것을 가지고 자신을 자랑하지 말고, 그 모든 은혜와 은사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주님)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이것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립니다. 하나님께 무언가를 받았을 때, 그때 우리는 잠시 하나님께 감사하지만, 그것을 금세 잊어버리고 모든 것이 내가 잘해서 된 것이냥 자신을 자랑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들과 똑같은 교만의 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복음을 깊이 깨닫는 은혜를 내려주시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깨닫지 못하면 10년이 지나도 우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지식적인 깨달음이 아니라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경험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저와 여러분들도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의 영광을 깊이 깨달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생각하기 자신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스스로 자랑하고자 할 때가 영적으로 교만한 상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면 허탄한 자기 자랑은 다 사라지고 그렇게 되기까지 은혜 주신 하나님만 자랑하게 되며,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겸손의 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