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창 12:1~20 외울말씀 창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들어가기 창세기 11장까지는 창조와 온 인류에서 이제는 선택 받은 백성에게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선택 받은 백성의 시작은 아브람으로 시작됩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는 75세였습니다. 누구나 안정을 위하고 모험과 위험을 피하려는 때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긴 여정에 닻을 올립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으로 옮기기 위해 하란으로 하란에 있을 때에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명령만 한 것이 아니라 복을 주고, '너는 복이 될지라'는 말씀까지 듣게 됩니다.
1. 아브람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기 위해 떠나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1절)
창세기 12장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정답)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
설명) 창세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1~11장의 전반부는 천지 창조, 첫 사람 아담의 선악과 범죄, 노아 대홍수, 바벨탑 사건등 전인류의 근본적 운명을 결정지은 4대 사건을 중심으로 전인류의 초기 역사입니다.
12~50장의 후반부는 아브라함을 포함한 이삭 야곱 요셉 등 구약 선민 이스라엘 민족의 직계 조상들인 4인의 족장들의 생애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행적은 12장~25장 18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12장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1~3절: 소명을 받는 장면 4~5절: 가나안 이주 6~9절: 이주 직후 정착 단계의 생활상 10~20절: 아브라함의 애굽 이주 사건
1절에서 ‘너는 가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아브라함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며 어느 누구도 아브라함을 대신하여 그 명령을 수행할 수 없음을 강조하는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버리고 떠나야 할 것으로 3가지로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입니다. 이것은 모두 과거의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라 할지라도 아브라함이 이러한 것들을 과감히 버리도록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요구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인간의 판단으로는 가혹하게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때로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하여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라고 요구하실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너의 고향’은 ‘너희 땅에서부터’란 뜻입니다. 친척과 아버지의 집보다 앞서 나온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궁극적으로 인도해 가실 곳이 바로 약속의 ‘땅’ 가나안이었기 때문입니다.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최초의 요구로 ‘땅’을 떠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옛 삶과 새 삶의 구별을 요구하신 것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출발과 함께 가나안의 약속이 다스리는 삶의 영역으로 행하는 실제적인 삶을 강하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친척’은 ‘출생하다’로 변역된 단어에서 유래하여 ‘한 조상으로부터 태어난 자’란 문자적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친척’이란 말을 명시적으로 사용하신 것은 당시 하란에는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가족들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치안 유지가 잘 되지 않았던 고대 사회는 오늘날보다 친족의 중요성이 훨씬 컸습니다. 따라서 친족이 많은 자는 유력한 자로 여겨졌으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친족은 모여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친척 뿐 아니라
보다 가까운 혈족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의 집조차 떠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큰 희생의 요구입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너의 아버지의 집으로부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향’란 넓은 영역에서 ‘친척’이라는 중간 영역으로 그리고 마지막 ‘너의 아버지의 집’ 즉 가장 작은 영역으로 아브라함이 떠나야 할 곳을 점점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소명의 내용은 당시 친지와 깊은 유대 관계를 가지고 살고 있었던 고대 유목민에게 있어서 따르기에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신앙생활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동조를 받을 수도 있으나 그 시작에 있어서는 외로운 결단이 필요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시작되듯이 나를 찾아오시는 하나님도 나에 대한 문제부터 시작하여 주변으로 구속의 계획을 확대해 가시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이 나타나사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명령과 축복의 말씀을 들은 아브람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4절)
창세기 12장 4절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정답)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설명)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를 직역하면 ‘그러자 아브라함이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갔다’입니다.
1절에서 아브라함의 처음 반응이자 행동을 보여 주는 단어 ‘따라갔고’란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분명하신 명령에 어떠한 의심이나 질문이나 거리낌 없이 단호한 결정과 순종을 아브라함이 행했던 것을 명료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것만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대결단을 내림에 있어 인간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일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오직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서만 행동했습니다. 이러한 말씀 중심의 신앙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했습니다.
롯도 어떤 모습인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간 바로 그 결과에 따라 롯도 단호하게 하란을 떠났음을 보여줍니다. 롯은 아브라함과 같이 여호와의 명령을 직접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브라함을 삶의 모델로 삼고 ’그와 함께‘ 동행하는 미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성도들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정립한 신앙의 사람과 동행함으로써 영적 유익을 얻어야 합니다.
3.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아브람은 무엇을 가장 먼저 행하였습니까? (7~8절)
창세기 12장 7~8절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정답) 여호와께 제단을 쌓음
설명)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는 ‘그러자 그는 쌓았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을 자신의 자손들에게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듣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단을 쌓았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편 아브라함이 단을 쌓은 행위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굳게 믿으며 또한 감사한다는 표현입니다. 또한 이 표현은 정복자가 땅에 군기를 꽃아 자신의 영통임을 드러내듯이 가나안 땅이 여호와의 땅임을 널리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무런 증거도 없었지만 신앙의 사람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 그 자체만을 철저히 신뢰하고 먼저 단을 쌓았습니다.
‘여호와께’라는 표현은 옛 성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라고 표현되었습니다. 모든 일의 최종 목적을 여호와께 두는 아브라함의 성숙한 신앙을 잘 보여 줍니다. ‘단을 쌓는’ 외형적 행동보다는 단을 쌓는 마음의 동기 즉 ‘여호와를 위하는’ 그 정신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위하여 단을 쌓았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형식적인 신앙 행위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유리하는 중에서도 신앙 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그의 신앙 생활은 주로 제단을 쌓는 것과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는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공식적인 예배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어떤 정황 중에 있든지 간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을 늘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생활이야말로 절망을 소망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변화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4. 기근으로 첫번째 위기가 찾아옵니다. 아브람의 선택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 어디로 향하고 있었습니까?(11절)
창세기 12장 10~11절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정답) 애굽
설명) 창세기 12장 10~20절은 가나안 땅에 기근이 닥치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은 미처 생각하지도 않은 채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났다가 자신의 아내 사라를 빼앗길 뻔하였으나 하나님의 극적 개입으로 구출되었던 소위 아브라함의 첫 번째 실수 사건입니다.
10절은 ‘그 땅에 기근이’라는 말이 본 절 앞뒤에 있습니다. 이는 본절 중간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애굽 여정이 결코 불신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재해로 인한 결과였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한편 당시 아브라함이 살던 팔레스틴에는 샘이나 강이 흔치 않았으므로 비 한 방울 없는 오랜 가뭄이 닥치면 극심한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당시 아브라함이 머물렀던 ‘남방’은 사막 지역으로서 원래부터 거치른 땅이었으므로 이런 가뭄이 닥치면 간간이 있던 풀모기 마저 다 말라 버린다. 많은 가축을 이끌고 유목 생활을 하던 아브라함에게 이런 가뭄은 생존 그 자체를 위협받는 큰 위기였습니다.
‘애굽에 거류하려고’는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이주한 것은 그곳에 영구히 정착하려 함은 아니었습니다. ‘거류하다'라는 단어는 원래 ’길에서 벗어나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 단어를 살펴보면 주로 여행자로서 어떤 지역에 일시적으로 잠깐 동안만 머무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아브라함도 비록 애굽으로 내려갔지만 다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으로 돌아올 것을 기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려갔으니’ 문자적 의미 그대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단어는 아브라함이 팔레스틴 남방에서 보다 낮은 저지대로 이동한 것을 나타냅니다. 한편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간 것은 훗날 야곱의 가족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가는 사건을 예시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은 애굽이 하나님 백성의 적으로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애굽으로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기근을 통해 애굽 땅으로 내려가게 하심으로써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400년 동안 객으로 머물러 있게 될 환경을 미리 보게 하셨고 또한 위험에 처한 상황에 대처하는 자신의 모습 속에서 비굴함과 남을 속이는 옛 사람의 모습을 보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할 때는 자신도 언제든지 타락할 수 있는 인간임을 경험케 하셨습니다.
성도의 삶에 있어서 항상 순탄한 길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인내와 고난이 수반 되어야 하는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성숙한 신앙을 갇게 되는 지름길입니다.
5.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며 아브람 자신과 아내 사래가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 보호하여 위기를 벗어나게 하셨나요? (17절)
창세기 12장 17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정답)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으로
설명) 여기서 ‘재앙과 내리신지라’는 동일한 어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리신지라’는 ‘닿다’란 뜻이 있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형벌로써 때리다란 의미를 갖습니다.
그리고 ‘재앙’도 역시 ‘닿다’란 뜻이 있는 단어에서 유래하여 강하게 때림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가하는 재난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이처럼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동사와 복수형 명사를 반복해서 사용함으로 당시 바로와 바로의 집이 얼마나 크고 많은 재난에 시달렸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는 바로가 사라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심한 질병을 내리셨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택한 백성을 보호하시기 위하여 때로 초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십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사단이 왕노릇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바로 당신의 자녀를 향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호하심 때문과 확신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비겁한 거짓말로 위험을 모면하려고 한 아브라함을 버리지 않으시고 신적 간섭으로 보호하시는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인간의 죄는 철저히 보응하시지만 그 인간을 향한 당신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섭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뜻하신 바를 성취하시기 위해서 선택한 당신의 사람들을 극한 상황으로 몰고가실 때도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의 나약함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전능하심을 바라보고 그 상황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생각하기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곳은 가나안 땅을 포함하여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흐르는 메소포타미아문명 일대를 지칭합니다.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내고 그들이 가지고 온 열매를 보아도 풍요로운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옥한 지역으로 가라고 명령하신 후 그 땅에 기근이 심하게 찾아옵니다. (10절)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약속한 바를 이루시기 위해 아브람을 그리고 사래를 지키시는 하나님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시고 아브람과 사래를 보호하시고 함께 하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보여줄 땅으로 가라 명하시면 안정된 기반을 두고 떠날 수 있을까요?
2. 우리에게 놓여진 상황가운데 현실을 보기 보다는 현실 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기를 소망합니다.
나누기 1. 신앙의 줄을 느슨하게 매듭을 짓게 되면 현실에 부딛치게 됩니다. 현실에 문제에 강하게 부딛칠 때의 일들을 나누어 봅시다.
2. 어려운 난관을 극복한 일들이 있을 겁니다. 극복의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이 어떠하였는지 나누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