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창33:1-20 외울말씀창33:18,20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들어가기 새로운 이름을 축복으로 받은 야곱이 새로운 각오로 새날을 맞이합니다. 20년 만에 야곱과 에서는 다시 상봉을 하게 되는데, 막상 만나고 나니 하나님은 적개심에 불타는 에서의 마음을 변화시켜 놓았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호해 주시리라 확신했습니다. 전날 밤에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실이 이러한 확신을 갖게 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어느 모로 보나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야곱이 새로 시작한 가나안의 생활을 주의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1. 에서가 눈 앞에 나타나자 야곱은 그의 처자들을 어떻게 하였습니까?(1-2절) 답 : 여종과 아내의 자식들을 각각 나누어, 여종과 그의 자식들을 맨 앞에, 레아와 그의 자식들을 그 다음에, 라헬과 요셉을 맨 뒤에 두었습니다.
해설) 야곱은 형 에서가 오는 것을 보고, 여종과 아내들의 자녀를 셋으로 나눕니다. 맨 앞에는 여종과 그의 자식들, 그 다음엔 레아와 그의 자식들, 마지막에 라헬과 요셉을 자리하게 합니다. 아마도 야곱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정도에 따라 아내와 자식들의 자리를 배치한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라헬과 요셉이 도망갈 수 있도록 그들을 맨 마지막에 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을 만나도 사람의 본성이 순간에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얍복강 사건 후 야곱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깊어진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가족들을 앞서 보내고 자신이 맨 뒤에 남았지만, 그가 하나님을 만난 후에는 자신이 맨 앞에 나아가 형 에서를 만납니다. 하나님을 만난 후에 야곱이 하나님의 약속과 보호하심에 대한 확신과 용기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맨 마지막에 남아 있던 자리에서, 맨 앞으로 나아가 형 에서를 맞게 된 것입니다.
2. 에서를 보고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다”고 한 야곱의 말은 과장된 말입니까? 아니면 진심이겠습니까?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10절) 답 : 형이 자신을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야곱은 진심으로 말한 것입니다.
해설) 야곱에게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문제는 자신을 향한 형 에서의 분노였습니다. 야곱은 형이 자신을 만나면 죽일 것이라는 공포로 인해 너무나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형이 자신을 눈물로 맞아주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형을 만난 것이 마치 하나님을 만난 것과 같이 기쁘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에서는 야곱에게 무엇을 제의하였습니까?(12절, 15절). 야곱이 그 제의를 한사코 거절한 저의가 무엇입니까?(13-17절) 답 : 에서의 제의 : 12절-내가 너와 동행하겠다. 15절-내 종 몇 사람을 네게 머물게 하리라. 거절한 저의 : 하나님의 약속과 보호하심을 야곱이 확신했기 때문에
해설) 야곱을 만난 에서는 동생과 함께 자신이 거하는 세일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야곱이 어린 자녀들과 새끼 양과 소로 인해 천천히 가겠다고 말하자, 에서는 야곱에게 자기 종을 몇 사람 붙여주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혹시 있을지 모를 이방족속의 침입으로부터 야곱을 보호해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것을 거절합니다. 표면상 이유는 어린 자녀와 가축들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실제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보호자와 인도자 되심을 확신하는 신앙으로 야곱의 신앙이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에서가 거하는 세일 지역은 모압 아래에 있는 에돔땅입니다. 즉,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더더욱이 야곱은 자신이 처음 하나님을 만난 벧엘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라고 서원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형 에서의 제안은 완곡하게 거절한 것입니다.
4. 세겜에서 야곱은 정상적인 신앙생활로 돌아온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그가 거기서 무엇을 하였습니까?(20절) 답 :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함
해설) 야곱은 형 에서와 헤어진 뒤 숙곳에서 집을 짓고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습니다. 즉, 숙곳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숙곳에서 세겜으로 이동하여 세겜에 장막을 치게 됩니다. 본문 18절 말씀을 보면,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에 이르렀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야곱이 20여년 전, 벧엘에서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라고 서원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 길을 평안히 인도하신 것입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엘엘로헤이스라엘”라 불렀습니다. 엘엘로헤이스라엘은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야곱은 20여년 전, 자신의 서원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안전하게 인도하셨고,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 되셨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하기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과 등지고 살면 안 됩니다. 언제나 문제가 생기는 사람은 나와 밀접한 교류가 있는 사람입니다. 내 영역이 아닌 사람과는 상관없이 살게 되므로 원수질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마주 마주치는 사람들과 갈등이 생겨 인간관계가 불편해지면 삶이 피곤해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이라면 반드시 화해해야 합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가정 안에서 직장 안에서. 그것이 현명한 자세입니다. 창세기 33장에서 야곱과 에서의 화해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삶의 교훈은 인간관계에 대한 지혜입니다.
적용하기 1. 오늘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깨달음은 무엇입니까?
나누기 1. 서로 적의를 품고 있었던 형제들이 다시 화해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누어 봅시다.
2.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와서 세겜에 제단을 쌓은 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이지 묵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