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야곱은 세겜에서 오래 거주할 생각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 땅이 목축을 하는데 매우 좋은 여건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한 가지 잘못 생각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마음의 태도였습니다. 20년 만에 큰 복을 받고 돌아온 그가 먼저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잊었던지 뒤로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는 좋을 수 없었습니다.
1. 왜 하나님이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셨을까요?(1절)
1절 -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해설) 야곱은 다시 벧엘로 향합니다. 야곱에게 벧엘은 특별한 곳입니다. 그가 이삭과 리브가의 품을 떠나 홀로 인생 여정을 시작할 때, 하나님을 만났던 곳입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처음 하나님을 만났고, 이후에 반복해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찾아가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이 야곱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떠날 때, 그리고 밧단아람에서 떠날 때, 즉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에 현현하셔서 그의 삶을 이끄셨습니다. 야곱은 세겜 사건 이후에 다시 하나님과 만납니다. 이미 수차례 하나님을 만났고, 그의 이름도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야곱의 신앙을 재점검하십니다. 창세기가 보여 주는 야곱의 신앙은 일관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결단하기도 하고 (28장), 에서와의 만남을 앞두고는 하나님께 간절하게 매달리기도 했지만(32장), 그의 습성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34장). 신앙에 굴곡이 있는 야곱의 모습은 우리의 신앙과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 결단하지만, 그 신앙이 계속 유지되지는 않습니다. 야곱처럼 굴곡이 있어서 때로는 신앙의 정점을 찍지만, 금세 내리막길을 걸으며 좌절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을 한번 만나는 것으로 충족될 수 없으며, 반복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시는 네 개의 명령문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일어나라’, ‘올라가라’, ‘거주하라’, ‘제단을 쌓으라’. 야곱의 다급함을 알고 계셨던 하나님께서 그의 다급한 마음에 걸맞게 신속하게 이동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가족을 이끌고 벧엘로 가서 그곳에 살며 옛적에 라반에게 도주하면서 서원한 대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예배하라고 하셨습니다. 벧엘로 올라가 그곳에서 살며 제단을 쌓아 예배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곧 하나님께서 야곱 일가가 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야곱이 제단을 쌓지 못하고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번에도 곤경에 처한 야곱 일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신 것입니다.
정답) 야곱이 옛적에 라반에게 도주하면서 서원한 대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예배하게 하기 위해서.
2. 진심으로 회개하고 복종하는 야곱을 하나님이 어떻게 도우셨습니까?(5절)
5절 -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 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해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기도를 들으시고 누구도 야곱 일행의 뒤를 쫓지 못하도록 두려움으로 그 지역 사람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세겜 사람들에 대한 야곱의 두려움이 야곱의 하나님에 대한 세겜 사람들의 두려움으로 바뀌는 반전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야곱이 처음부터 하나님을 신뢰했다면 세겜 사람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역시 이 탈출을 성공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답) 세겜 사람들이 야곱을 두려워하게 만드심.
3. 벧엘로 돌아온 야곱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환영하셨습니까?(9-15절)
해설) 야곱의 예배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으로 밝히십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기 전 야곱을 먼저 만나주시고, 브니엘에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개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벧엘에서 야곱의 이름을 재확인시켜주고 계십니다. 야곱도 응답으로 돌기둥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드리며, 그곳 이름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15절). 같은 장소에서 하나님과 두 번의 만남을 경험한 야곱이 고백하기에 적합한 고백이었습니다. 창세기 17장에서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던 하나님께서 야곱에게도 동일하게 전능의 하나님 되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번성의 복을 야곱에게 동일하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정답) 야곱이 다시금 하나님을 의뢰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이스라엘임을 강조하시면서 약속의 상속을 재확인해 주셨다.
4. 라헬이 낳은 야곱의 막내 아들의 이름은 무엇입니까?(18절) 라헬이 죽자 묘비를 세우는 야곱에게서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19-20절)
18-20절 - 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19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20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해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다시 베들레헴으로 떠납니다. 하나님을 만나 신앙을 재정비한 것입니다. 그에게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가장 먼저, 베냐민의 출생입니다. 한 생명의 출생은 기쁜 일이지만, 출생의 과정에서 야곱이 너무도 사랑하는 라헬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탄생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입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는 동시에, 사랑하는 아들을 얻었습니다. 야곱은 슬펐지만,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에서 '베나민'으로 바꾸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야곱은 라헬을 베들레헴 길에서 장사지내고 묘비를 세웠습니다. 히브리인들은 특별히 기념할 만한 사건과 장소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주변의 돌로 비석을 세우곤 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관련된 사건이 있는 장소에 비석을 세운 기록이 많이 있지만, 사람의 무덤에 묘비를 세우고, 그 이름을 불렀다는 기록은 라헬의 묘비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이는 야곱의 라헬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를 잘 설명해주시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하는 부인을 떠나보낸 슬픔 앞에서도 야곱은 라헬의 둘째 아들 이름을 ‘슬픔의 아들’이라고 부르지 않고, ‘오른손의 아들’을 뜻하는 ‘베냐민’이라고 불렀습니다. 성경에서 오른손은 능력과 힘의 상징이자,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능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야곱은 어머니 없이 자라야 할 막내아들이 힘 있고 강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했던 것입니다.
정답) 베냐민, 라헬을 향한 야곱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를 잘 설명해 줌.
5. 야곱의 노년에 일어난 또 하나의 가정 비극이 무엇입니까?(22절)
22절 -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 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해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 기쁨도 잠시, 장자르우벤이 아버지의 첩인 빌하와 동침합니다. 빌하는 라헬의 몸종이었으며 라헬이 아이를 낳지 못하자 자기를 대신해 아이를 낳아달라며 남편 야곱에게 준 ‘씨받이’였습니다. 그녀는 단과 납달리를 낳았습니다. 라헬이 죽자마자 그녀의 몸종이 이런 일을 겪는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르우벤이 서모와 동침했다는 것은 단순한 근친상간이 아니라 아버지의 재산과 권한을 요구한 행동으로 해석됩니다. 즉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디나 일로 인해 시므온과 레위의 지위가 급상승ㅎ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아 이런 일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패륜 행위 앞에서 야곱이 느꼈을 배반감과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까요? 장자가 패륜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일인지 야곱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이는 다말이 수치를 당했을때 야곱이 침묵했던 것과 유사합니다. 이유야 어덯든 가장으로서 야곱은 분명 이 일에 대해 침묵하면 안 되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응징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침묵할 뿐이었습니다. 집안의 질서와 분위기를 파괴하는 범죄자를 응징해야 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 일 이후 야곱이 리더십을 행사하는 일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됩니다. 훗날 야곱은 이 일을 빌미 삼아 르우벤에게게 가야 할 장자의 복을 유다에게 주었습니다.
정답) 장자 르우벤이 근친상간을 저지름.
<생각하기> 야곱의 삶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인내의 역사는 영적인 성숙의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한 걸음 한 걸음 이끌어 가시는지 깨닫게 해 주는 하나의 교훈을 제공합니다. 때때로 뒤돌아보면, 과거에 우리가 영적이라고 여기고 행했던 일들이 부끄럽거나 무안할지 모릅니다. 지나고 보면 그런 행동들이 사실은 생각이 얕고, 천박하며, 이기적인 것임을 인식하게 될지 모릅니다. 다른 경우, 뒤돌아보면 시간과 기회를 낭비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후회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를 계속해서 이끄시며 믿음과 헌신, 섬김에 전진하도록 인내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만 합니다.
<적용하기> 오늘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깨달음은 무엇입니까?
<나누기> 당신의 현주소는 세겜입니까? 아니면 벧엘입니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다음 세대에 열매를 거두게 하실 우리 세대에 힘쓰고 애써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