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삼상15:10-23 외울말씀삼상15: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들어가기 사울의 불순종은 하나님과 사무엘에게 큰 근심과 슬픔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사울은 자신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고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거둔 업적을 자랑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의 책망을 들은 뒤에도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여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더 이상 참지 못한 사무엘이 사울을 호되게 질책합니다. 하지만 사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에 이행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온전히 순종하지 않는 것은 우상 숭배와 같다며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사울을 이제 하나님께서 버리셨다고 선포합니다.
1. 사울 왕은 하나님의 후회의 대상이요, 사무엘의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 무엇을 합니까? (11절) 삼상15:11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답 : 근심하여 밤새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해설 : 사무엘 선지자는 왜 그토록 근심하며 온밤을 지새워 하나님께 기도했을까요? 앞 부분에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겉으로는 백성들의 요구에 의해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지로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사울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울은 그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하고 말았습니다. 둘째‘후회하노니’를 통해 하나님 마음의 고통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후회’라는 단어를 말할 때 크게 두 개의 동사가 쓰인다고 합니다. 하나는 ‘슈브’입니다. ‘죄로부터 하나님에게로 돌이키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쓰인 다른 하나의 동사 ‘나함’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따라 사람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나 이것과 반대로 사람에 대한 태도를 완전히 바꾸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후회(나함)는 거룩한 사랑의 고통을 나타내는 신인동형론적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만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아픈 심정을 표ㅎ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후회하심’에 대해 칼빈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치명적인 고뇌로 자기 자신의 마음을 찌르는 것 이상으로 그것들로 말미암아 괴로움을 당하시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는 괴로워하며 깊이 부르짖어 기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후회하심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중간에 보면,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울의 죄는 표면적으로 그가 제사장의 권한을 깨뜨립니다(13:13). 또한 아멜렉을 철저히 진멸하지 못한 데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가 하나님을 따르는 방향과 정반대인 사람의 뜻과 만족을 위한 방향으로 돌이킴 없이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을 따르는 여호와의 종으로서 살려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절대적인 통치자가 되려 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교만했고 하나님의 명령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던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근심하며 부르짖었습니다. 하지만 ‘근심’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오히려 ‘진노’의 의미를 더 많이 담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이미 사울에게 간곡하게 권면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울은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그로 인해 왕에 대한 의분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도록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의 고통함으로 인해, 그리고 사울을 불쌍히 여겨달라는 중보의 의미도 내포되어 사울의 범죄로 인한 징계가 이스라엘 전체에 미치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였을 것입니다.
2. 기도로 밤을 지새운 사무엘은 갈멜에 있는 사울을 만나러 갔습니다. 갈멜에서 사울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12절) 12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답: 사울이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감
해설 : 사울은 자신을 위해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사울이 기념비를 세운 행동은 아멜렉에게 승리를 거둔 것을 자신의 공으로 돌리는 가증한 행동임을 의미합니다. 사울은 아멜렉 전쟁의 승리도 자신의 것으로 백성들에게 기억하게 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특히 전쟁에서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기 위해 기념비를 세우는 것은 당시 이방 왕들의 전형적인 행위였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지니는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합니다. 사울 왕은 그를 처음에 요구할 때 백성들이 필요로 했던 이방 왕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세운 인간의 안목과 욕심은 다른 모든 죄의 시작점이 될 뿐 아니라 자신을 파멸의 길로 인도하는 올무가 됩니다. 특히 하나님꼐서 선택하신 리더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의 견해를 중시하는 인본주의적 신앙을 갖는다면 그 결과는 사울의 결과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됩니다.
3. 사무엘은 사울 왕이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은 이유를 추궁했습니다. 사울 왕은 무슨 이유 때문이라고 둘러댔습니까? (15절) 15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 답 :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 가장 좋은 것을 남겨 놓았기 때문입니다. 나머지는 다 진멸했습니다.
해설 :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 전리품을 남겨 왔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사울은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죄 없는 백성들을 들먹거렸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기 위해 거룩한 제사와 관련시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즉 그는 종교를 가장하여 자신의 경건을 부각 시키려 했습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타인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인류가 최초로 범죄한 후 나타난 특징 중 하나입니다. (창3:12,13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4. 사울 왕은 여전히 변명을 계속했습니다. 사울 왕은 불순종의 책임을 누구에게 전가했습니까? (20-21절) 20,21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답 : 백성
해설 : 사울은 자신의 무죄를 항변하며 무고한 백성들을 반복해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20절 말씀에 보면 사울 자신은 하나님의 목소리에 청종했다고 했고, 반면에 백성은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끌고 왔다고 변명합니다. 내가 한 일은 의롭고 저들이 한 일은 잘못이라는 논리입니다. 왕의 변명을 통해 우리는 책임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가시키고, 자신은 그 책임을 면하려는 매우 부도덕한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일국의 왕이라면 설사 백성들이 그러한 요청 했을지라도 백성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식의 무책임한 행동을 보여서는 안 되었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백성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사울의 행위는 이미 그가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자였을 뿐만 아니라 세상의 기준으로 보아도 왕의 자질을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비겁하고 추악한 상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길갈은 사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길갈은 다윗 시대 이전까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거룩한 장소였고 무엇보다 사울이 사무엘과 백성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왕으로 인정받았던 도시였습니다.(11:15)
그럼에도 사울은 이곳에서 하나님 여호와께 다시금 제사를 드릴 것이라고 말하며 또 한 번의 범죄를 저지르게 될 것을 암시합니다. 사울에게 있어 제사만 드리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제사 만능주의에 빠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의식적인 제사를 드리기에 앞서 여호와의 명령을 말씀 그대로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5. 하나님은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따르는 것을 좋아하십니다(22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완고하게 거역하는 것은 어떤 죄와 같습니까? (23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답 : 점치는 죄와 같고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해석 : 먼저 사무엘은 23절에서 불순종에 대해 ‘거역’과 ‘완고함’이라 정의했습니다. 첫째 ‘거역함’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의미입니다. 이를 ‘점을 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는 당시 이방 신을 숭배하는 자들이 일반적으로 행하던 행위였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첫 계명에도 당연히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철저하게 금지된 행위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은 점을 치는 행위, 곧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은 곧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우상숭배와 다름없다는 뜻이고 그로 인한 심판을 피할 수 없음 말합니다.
둘째. ‘완고함’은 ‘교만’과 ‘뻔뻔함’을 의미합니다. ‘사신 우상’이란 의미는 ‘테라 핌’ 즉 ‘드라빔’과 같은 가내 수호신 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크기가 작고 번영을 가져다 주는 신상입니다.
한편 사무엘이 ‘거역하는 것’과 ‘완고함’을 ‘사술’이나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것’으로 비교하는 것은 ‘우상 숭배’가 ‘거역’과 ‘완고함’,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즉 거역하는 것과 완고함은 실제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불순종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이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로 격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서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우상숭배나 진배없는 큰 범죄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사울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 이로 인해 본문은 이스라엘의 궁극적 통치자가 누구인지를 밝히 보여줍니다.신정 왕국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궁극적 주체는 백성들이 선출한 왕이 아닙니다. 왕을 통해 자신의 뜻하신 바를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왕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대로 이스라엘을 다스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은 그를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므로, 그가 여호와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사울이 여호와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 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생각하기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을 기억하지 않았으며 그 말씀을 실천함에 있어서도 섬세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할 때에는 바른 깨달음, 완벽한 순종에 이루려고 하는 열망이 필요합니다. 사울 왕은 이러한 열망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높아지는 것, 자신의 공적을 쌓고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하는 외식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교만함으로 인해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만 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 된 삶은 우리가 무당에게 가서 점을 보거나 불상 앞에서 절하는 것과 똑같은 되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적용하기 1. 오늘 주신 말씀 중에 내게 가장 도전이 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나누기 1,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다음 실천하는데 가장 방해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2. 여러분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사람 즉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에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까?